

지난 주말, 평소 민중노동운동가로 활동 하는 시인 '박노해' 그가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현장에서 촬영한 120여점을 전시한 사진전에 다녀왔습니다. 평소 사진을 열심히 찍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 크게 관심을 갖지 못해 사진전을 자주 다니지 않았는데, 온라인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장의 사진이 유난히 마음에 와 닿아 주저 없이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
Maras, Cusco, Peru, 2010
바로 이 사진입니다. 화가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기'가 떠오르게 하는 저 한장의 사진. 높디 높은 안데스 고원에서 힘겨이 농사지며 살아가지만 그들의 삶에 만족하고 즐거이 노동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흑백의 사진속에 회화적으로 담아 내었습니다. 마치 한편의 흑백 영화의 스틸컷, 흑백으로 그려진 유화 처럼 느껴지는 이 사진 한 장이 전시장으로 제 발을 이끈 것 같습니다. 또한, 사진과 함께 박노해 시인이 붙여 놓은 내 삶에 감사합니다 라는 뜻의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 제목이 마치 주문인양 저를 이끌었습니다.
<나 거기에 그들처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나 거기에 그들처럼> 박노해 사진전, 앞에 붙은 타이틀 처럼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그가 돌아 다닌 장소의 모습을 이방인의 눈이 아니라, 마치 그들속에서 함께 살아 숨쉬며 그들의 일상을 기록한 듯한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사진들을 흑백필름으로 촬영한 영상으로 담백하면서도 거친느낌으로 담아낸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럼 제가 관람하면서 인상 깊었던 사진 몇장을 소개 하도록 하겠습니다.

'갱도 입구의 광석 추출'
Kami, Bolivia, 2010
아시나요? 볼리비아는 전세계 리튬 매장량의 1/3에 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리튬은 휴대폰, 전기자동차에 쓰이는 2차 전지의 주 원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최첨단 제품에 쓰이는 원료를 볼리비아의 광산 노동자들이 깊은 갱도에 들어가 수작업으로 캐내오고, 이것을 일일이 망치로 깨고 손으로 빻아서 생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나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원주민들은 서구 자본의 수탈과 백인 정권의 부패로 인해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 사진은 그런 원주민들의 모습을 흑백 필름에 담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무 아래 까페'
Bahir Dar, Ethiopia, 2008

'에피오피아의 아침을 여는 분나-세레모니'
Simien Mountains, Ethiopia, 2008
이 사진은 에티오피아의 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에티오피아 하면 아프리카에 위치한 커피 원두의 생산국으로 무척이나 유명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공정무역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두되면서 우리의 커피마시는 문화와 이들의 생활이 대조적으로 보이기도 했던 나라이기도 합니다.
박노해 시인은 사진으로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겠지만 그들 방식의 커피를 즐기는 모습을 담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에티오피아의 아침을 여는 '분나 세레모니' 사진에서는 가정에서 하루의 아침에 가족과 커피를 나누기 위해 준비하는 소박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인상적인 부분으로 사진의 우측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며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를 보여주려 한 것 같습니다.

'리마의 상징인 십자가상 뒤편'
Cerro San Cristobal Lima, Peru, 2010
페루의 수도 리마, 그리고 그곳을 상징하는 거대 십장가상. 과거 대항해시대 시절 스페인에 잉카 제국이 정복당하며 원주민들은 오랜 식민지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승리를 자축하며 거대 십자가상을 세웠다.
박노해 시인은 그 거대 십자가상을 역설적으로 높은 산등성이 위에서 태양과 그것을 등지고 원주민들의 거주지를 바라보며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그리하여 원근감은 사라졌지만서도 그들은 여전히 명확하게 낮은 곳에 있었고, 검은 십자가의 그림자에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내가 걷는 길'
Yanacancha, Cusco, Peru, 2010
페루의 안데스 산맥, 그중 가장 높은 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 '께로족'. 그들은 매일 같이 이 길을 걸어 다닌다. 나와 같은 일반인에게는 가만히 서서 숨쉬는 것만으르도 벅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길을 그 흔한 운동화 한켤례 신지 않고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다. 저 멀리 태양을 등진채...
박노해 시인은 사진속에 거대한 자연에 비해 작디 작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광활한 산맥을 배경으로 함께 담아 왠지 더욱 초라해 보이게 만들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도, 어쩌면 저 사진속의 모습과 같은지는 않은지 문득 생각이 든다...

'구름의 계단밭'
Shi tou cheng, Yunnan, China, 2007
위 사진은 박노해 사진전에서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컬러 사진. '구름의 남쪽' 이라 불리는 원난 지방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으로 저 멀리에 마을과 같은 수평선 위에 위치한 구름을 보며 얼마나 높은 곳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또한 짙푸른 차밭과 대조되는 하이얀 벽은 왠지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던 그들 마음의 표출이 아닌가 생각된다...
역사의 시간이 멈춘듯,,,,
사진은 찰나의 시간을 담는 예술입니다. 그런데 이번 박노해 사진전을 관람하며 느낀 것은 사진을 촬영한 그 순간, 그 찰나의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오래된 역사 그림을 보듯, 우리의 과거를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역사의 시간이 멈추어 버린 것같은 느낌.
사진 평론가인 진동선씨는 '아는 만큼 사진이 보인다' 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 이 말은 사진을 보는 사람, 촬영하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번 사진전에 전시된 사진들은 어쩌면 그들에게 매우 평범한 일상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박노해 시인이 그들에 대해 이해하고 그들의 삶속에 동화되어 촬영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진작품들이 나오고 제가 지금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마도 박노해 시인이 다음에 남긴 한마디가 모든걸 표현하고 있지 않나 생각 됩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다, 사랑한 만큼 보이는 것이다.
내가 사진 속의 사람들을 찍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카메라를 통해 내 가슴에 진실을 쏜 것이다"
박노해 시인이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전세계 각지에서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생활을 담아온 사진들, 그리고 사진 하나하나에 적어놓은 글귀들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