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사진전 - 나 거기에 그들처럼
박노해 사진전 - 나 거기에 그들처럼

 
작성일 : 10-01-03 21:16
스스로를 광야로 쫓은 시인, 사진으로 돌아오다
 글쓴이 : 주간한국 (211.♡.149.133)
조회 : 1,948  
스스로를 광야로 쫓은 시인, 사진으로 돌아오다
박노해 시인 첫 사진전 <라 광야>


샤이르 박. 중동의 아이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샤이르'는 아랍어로 시인이라는 뜻이다. 시인 중에서도 권력자에게 밉보여 광야로 쫓겨난
자다. 세속에는 발 붙일 수 없으나 신과 통한다 하여 고대 아랍인들은 샤이르를 선지자로
받들었다.

샤이르 박. 중동의 아이들은 한국 시인 박노해를 그렇게 불렀다. 변변한 소속도 그럴듯한
권위도 없이 덜렁 만년필과 구식 카메라만 들고 평화활동 하겠다고 찾아온 그를 호위해
자신들 속으로 안내했다. 끝없는 전쟁과 가난 속에서는 "곁에서 함께 울어주고 어깨를
안아주고 총성이 그치면 아이들과 바람 빠진 공을 차며 놀아주는 일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던 무력한 시인의 무력한 사랑"('작가의 글' 중)이 그토록 강력한 것이었다.

그렇게 "읍면리 단위까지" 다니며 10년간 찍은 중동 사진들이 새달 7일부터 서울시 중구
저동에 위치한 갤러리M에 전시된다. 박노해의 첫 사진전 <라 광야>다.

4만여 점의 사진에서 37점을 추렸다. 끝내 담긴 것은 인간을 향한 정중함이다.
참상이 아니라, 참상 속에서도 자존하려는 삶에 대한 경의가 보인다. 예를 들면
'시리아 사막 길에서 저녁 기도를 바치는 이라크인들'이 그렇다. 바닥에 꿇어 앉아 고개를
숙인 그들의 몰두에 한낱 주변은 사라진다.


'유프라테스 강가의 농부'가 그렇다. 그는 5천 년간 이어져온 전통적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그의 모습이 곧 지역의 역사인 셈이다. 고대인들이 저렇게 문명을 틔웠을 것이다.
농부의 움직임은 정직하고 굳세다.

"참혹한 가난과 분쟁 현장에서 나는 충격적인 장면과 극적인 이미지를 향해 다가서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 없고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먼저 그 사건이 발생한 삶의
뿌리로 스며들어간다. 수 천년 이어온 삶의 터무늬 위에서 지속되는 삶, 경작하고 노래하고
연애하고 아이를 낳고 차를 마시고 기도하고 꿈꾸고 저항하는 민초들 속으로 혈육처럼
나직이 스며들어간다"고 박노해는 '작가의 글'에 적었다.

그의 카메라 앞으로 많은 삶이 지나갔다. 중동은 수평선에 붙은 하늘과 바다처럼,
생사가 가깝고도 먼 곳이었다. 팔레스타인의 집집마다 전사자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전사한 형의 사진 앞에서'), 시리아 사막에서 미국이 심은 오렌지 나무가 적응하지 못해
마르는 동안('바그다드 가는 사막 길의 말라 죽은 오렌지 나무')에도 레바논의 아이들은
빵을 구하러 폭격 현장을 가로질렀다.('빵을 구하러 가는 남매')

이 풍경들을 기록하는 것은 꼭 다시 보자는 약속이었다. 중동의 아이들과 어울리다 헤어질 때
 박노해는 "잘 있으라"대신 "살아 있으라"고 말했다. 기원(祈願)이었다.
그리고 떠났던 시인이 돌아오는 날 살아남은 마을은 잔치를 벌였다. 그 와중에 사진 속
아이들은 제법 사내가 되었거나, 아가씨 티가 나거나, 지난 폭격과 테러에 죽었거나 했고,
슬픔도 당장 서로를 환대할 힘이 되었다.


"총알은 언젠가 바닥 나겠지만 샤이(차)를 마시는 건 영원하지요. 먼데서 온 친구여,
우리 함께 갓 구운 빵과 샤이를 듭시다"라고 말하며 중동 사람들은 시인에게 자신의
품만한 빵을 내어 주었다고 한다.('지상의 둥근 빵')

이 사진들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라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고 싶지 않았던"
박노해의 10년 간의 침묵이다. 지난 12월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중동에 간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의 제 삶이 모조품 같았습니다. 감옥에서 나와 보니 함께 운동하던
분들이 너무 많이 돌아가셨더군요. 제가 병들지 않고, 미치지 않은 것이 미워질 때가
있었습니다. 편하게만 산 것은 아닙니다. 사형 선고도 받았고, 빨갱이 변절자 소리도
들었지만 석방되니 너무 유명해진 것 같았습니다."

"손을 잡고 함께 축구만 해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었다. 어떤 현실에서도
어떤 소박한 것으로도 서로 보살피고 자신을 경외하며 살아낼 수 있는 인간의
강인함이야말로 역사를 구원할 힘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사진들이 끝내 남기는 것도
시인이 스스로를 광야로 쫓은, 바로 그 연원이다.


주간한국 2009.12.31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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