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사진전 - 나 거기에 그들처럼
박노해 사진전 - 나 거기에 그들처럼

 
작성일 : 10-01-11 15:02
시인 박노해 사진전-28일까지 충무로 갤러리M서
 글쓴이 : 미디어오늘 (202.♡.218.194)
조회 : 2,443  

삶이 뭐라고 생각하니?

“죽지 않고 사는 거요. 죽지 않고...”

라 광야의 아이들아. 부디 죽지 말고 다치지 말고 우리 살아서 다시 만나기를.  

   
  ▲ 광야의 아잔 소리. Jerash, Jordan, 2008. 박노해.중동의 광야에는 신성한 시간의 음률과 날카로운 분쟁의 긴장이 함께 흐른다. 그러나 모래바람 속에서도 올리브 새싹은 피어나고 폭음 속에서도 갓 태어난 어린 양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석양의 아잔 소리 (코란 낭송 소리)가 길게 울리면 삶은 그대로 살람 Salam, 평화이다. Archival Pigment Print. 52.8x35cm.  
 
 
   
  ▲ 고향을 빼앗기고 유랑하는 팔레스타인 가정에서 소중하게 자식에서 물려주는 것 중 하나가 다시 돌아가서 문을 열어야 할 고향집 열쇠다. 자신의 사진 앞에서 박 씨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박노해.

1984년, 엄혹한 군사정권하에서도 100만부 이상이 팔려나간 시집 ‘노동의 새벽’의 저자로 한때 ‘얼굴없는 시인’으로 불리웠던 그. 그는 이후 7년 여를 수배자로 쫓기며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해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가 91년 정보기관에 체포되어 24일간의 불법 고문 끝에 ‘반국가단체 수괴’ 제목으로 사형이 구형되었다가 무기징역형에 처해졌다.

옥중에서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과 에세이집<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해 변절자로 비난을 받기도하고 많은 감동을 주기도 했다. 7년 5개월의 감옥생활 끝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1998년 광복절에 석방되었고 이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다.

그랬던 박 씨가 7일, 지난 10여 년간 전쟁의 고통속에 있는 이라트,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터키-쿠르디스탄 등 중동분쟁지역과 빈곤지역을 걸으며 그곳을 기록한 사진으로 첫 개인전 <라 광야>를 열었다.

   
  ▲ 광야의 길. Jericho, Palestine, 2005. 박노해.수많은 예언자들이 걸어온 광야. 예수가 40일 동안 금식기도하며 세 번의 유혹을 이기고 걸어 나온 광야. 광야는 저항과 영성의 처소.다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Gelatin Silver Print. Archival Selenium Toning. 52.8x35cm.  
 

'라 광야(Ra-Wilderness)'의 라(Ra)는 태양, 빛, 태양신을 뜻하며. 라 광야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생한 중동의 '기름진 초승달 지역'과 맞닿은 지역이다.

중동분쟁현장에 찾아가 사진 찍고, 글 쓰게 된 계기에 대해 박 씨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의 공포에 울부짖는 아이들 곁에서 함께라도 있어 주는 것, 그것이 전쟁터로 달려 나온 제 마음입니다. 미움 없이 분노하고, 냉소 없이 비판하고, 폭력 없이 투쟁하고 슾습니다. 비록 전쟁의 세상에 살지만, 내 안에 전쟁이 살지 않기를...”-(도록 기획의 글 중에서)

   
  ▲ 파괴된 이스라엘 탱크 위에서. Bint Jubeil, Lebanon, 2006. 박노해. 레바논-이스라엘 국경 마을 빈트 주베일은 폐허의 지옥도였다. 파괴된 이스라엘 탱크 위에 서서 헤즈볼라 깃발과 레바논 국기를 들고 울먹이고 있는 알리 Ali (10세), 가디르 Ghadeer (7세). 피난갔다 돌아오니 집도 학교도 친구들도 사라져 버렸다. 왜 탱크 위에서 그러고 있니? “죽은 친구들이 하늘나라에서 보라구요.”“사라,후세인, 하산… 편히 잠들어. 폭탄소리에도 깨어나지 말고, 아프다고 울지 말고…”Archival Pigment Print. 52.8x35cm.  
 

전시와 함께 발간된 도록에 실린 ‘작가의 글’에서 박 씨는 “코리아는 이미 세계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세계화 문제와 직결되어 있고, 세계의 문제는 고스란히 우리 삶의 문제로 핏줄처럼 이어져 있다.”라고 말함으로써 8,90년대 국내 민주화,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그가 2000년 이후 왜 자급자족하는 ‘자율적인 삶의 공동체’를 지향하며 세계의 빈곤지역과 분쟁현장을 돌며 글로벌 평화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 동트는 마을마다 아침빵을 굽다. Al Jazeera, Syria, 2008. 박노해.알 자지라에 아침해가 떠오르면 어머니들은 화덕에 불을 피워 자신이 직접 씨 뿌려 거둔 햇밀을 빻아 소금을 넣고 아침빵을 굽는다. 수 천 년 전 선조들의 아침 풍경 그대로. “먼 데서 온 친구여, 우리 함께 갓 구운 빵과 샤이를 듭시다.”Gelatin Silver Print. Archival Selenium Toning. 52.8x35cm.  
 

사진들은 주요 외신보도를 통해 접하게 되는 중동분쟁지역 사진과는 사뭇 다르다. 폭탄테러나 유혈이 낭자한 자극적인 사진과는 일정하게 거리를 둔, 작가가 말한 대로 각 사진 한 장이 빛으로 쓴 시 한 편을 읽는 느낌이다.  당연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이유를 박 씨는 이렇게 밝힌다.

'무력한 시인의 무력한 사랑이었다. 나밖에 읽어줄 사람이 없는 작은 수첩에 감추어진 그들의 진실을 수없이 기록했지만 국경을 넘는 순간 언어의 국경을 넘지 못하는 나의 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래된 만년필을 쥐고 있던 내 손에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가 함께 들려졌다... 시인은 어둠 속에 모국어로 시를 쓰지만, 절실하면 국경을 넘어 빛으로 시를 쓴다.'-작가의 글 중에서.

   
  ▲ 폭격더미에서 살아나온 사나 샬흡 (13세) Qana, Lebanon, 2006. 박노해. 레바논 남부 까나 마을 집단학살 현장. 건물 지하실로 대피한 마을 사람들 중 65명이 사망했고 그 중 35명이 아이들이었다. 'A Plane VS A Child’(전폭기 대 아이들). 까나 마을 어린이 대학살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이스라엘과 미국은 인류의 눈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폭격더미에서 살아 나온 사나 샬흡은하루아침에 부모와 언니와 오빠와 집을 잃고 혼자서 어린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소녀 가장이 되었다. Gelatin Silver Print. Archival Selenium Toning. 45.5x30.5cm.  
 
   
  ▲ 빵을 구하러 가는 남매. Srobin, Lebanon, 2006. 박노해.몇 번이나 체포되고 억류되며 찾아간 스로빈 마을. 어른들은 부상과 탈진으로 망연자실인데 아이들은 참으로 놀라운 존재이다. 공포와 절망의 전쟁터에서 가장 먼저 울고, 가장 먼저 웃고, 그 어떤 무기로도 막을 수 없는 자신들의 미래를 향해 가파른 비탈길을 앞장 서 올라가고 있으니. Gelatin Silver Print. Archival Selenium Toning. 52.8x35cm.  
 

 전시된 사진 37점(흑백 34, 컬러 3)은 지난 10년 동안 찍은 사진 4만여 장 중에서 갤러리M 이기명 대표와 함께 지난 6개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선정한 것이며  흑백 인화는 유기철 씨가 맡았다. 작가는 사진을 보는 이들이 고통속에서도 살아가고 나누는 힘, 우리가 잃어버린 재생의 힘을 찾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장히 흘러가던 강물마다 파괴의 굴착음이 폭음처럼 울려오고, 8백만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농민과 서민들의 한숨이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대물림으로 한파처럼 몰려온다. 전투병 상시파병의 날카로운 합창이 총알처럼 파고 들고 남과 북의 대결음이 무서운 충돌의 불기한 예언처럼 들려온다. 어디를 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위기의 시대에 무릎 꿇는 힘으로 다시 일어서며 ’우정과 환대‘의 마음을 잃지 않는 <라 광야>의 사람들을 만나 광야의 아침을 함께 걸으며 우리 마음 깊은 곳의 선함과 용기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작가의 글 중에서.

   
  ▲ 수장될 위기에 처한 8천 년 된 하산케이프. Hasankeyf, Kurdistan, Turkey, 2006. 박노해인류 문명의 자궁인 티그리스 강의 상류 하산케이프 다리. 아나톨리아 고원과 메소포타미아 사이에서 문화 교량의 역할을 해왔으며 고대 수메르 문명과 로마, 오토만 제국의 문화 유적이 가득하다. 8천 년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하산케이프는 쿠르드인의 오래된 삶의 자부심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류의 문화 유산이고 영감의 원천지인 하산케이프는 지금 서서히 수장되어 가고 있다. 터키 정부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로 흐르는 생명수인 티그리스 강을 막아 중동의 수자원을 확보, 통제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의 지원으로 거대한 일리수 댐을 완공해 2006년 3월부터 물을 채우고 있다. Gelatin Silver Print. Archival Selenium Toning. 107.7x96.3cm.  
 

<라 광야>展은 서울 충무로 갤러리 M에서 7일부터 28일까지 열리며 15(오후 8시), 17(오후 3시), 27일(오후 8시)에는 전시장에서 작가와의 대화에 참여할 수도 있다.  박 씨는 지난 10여 년 동안 사진과 함께 써 두 었던 시와 글 4천 편을 정리해 올해 안에 책으로 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진전의 도록은 한국사진집 최초로 아랍어(공지현 한국외대 통역대학강사)와 영어(연재훈 런던대 한국학과 교수)로 동시 번역되어 눈길을 끈다.

   
  ▲ 고압전선 분리장벽 앞 목 잘린 천 년의 올리브 나무Salfit, Palestine, 2008. 박노해.팔레스타인 살핏 마을은 우람한 올리브 나무 숲이 능선에서 능선으로 끝도 없이 이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올리브가 생산되지만 수출이 봉쇄되어 수확한 올리브는 살핏 마을 협동조합 창고에서 썩어가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하수가 풍부한 이 땅에 유대인 정착촌을 짓는다며 천 년 된 올리브 나무의 목을 자르고, 고압전선 분리장벽을 세워가고 있다. Gelatin Silver Print. Archival Selenium Toning. 52.8x35cm.  
 

   
  ▲ ‘무자라드’ 의 아이들. Kurdistan, Syria, 2008. 박노해. 이 아이들은 ’무자라드 Red Card’다. 시리아 정부가 쿠르드인에게 발급하는 붉은 색의 무국적자 신분 증명서 무자라드. 이 신분으로는 여행도 대학도취업도 할 수 없고 집도 차도 전답도 소유권도 인정되지 않는, 사회적 죽음의 Red Card이다. 무려 30만 명이 무자라드이다. Gelatin Silver Print. Archival Selenium Toning. 52.8x35cm.  
 
   
  ▲ 페트라의 후손. Petra, Jordan, 2007. 박노해.기원전 6세기 페트라의 사람들은 시리아 사막 한 가운데 놀라운 문명과 도시를 이루었다. 거대한 협곡의 암벽을 손으로 깎아 세운 웅장한 건축물 페트라.관광객에게 골동품을 팔며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생활이지만 페트라의 아이는 조상과 끊어지지 않은 ‘내면의 끈’을 느끼는 듯 동정으로 사주는 손길을 정중히 거부하며 기품을 잃지 않는다. Gelatin Silver Print. Archival Selenium Toning. 30.5x45.5cm.




미디어오늘 2010.01.08.
이치열기자
truth701@mediatoday.co.kr

[이 게시물은 라 광야님에 의해 2010-01-11 15:11:22 [라 광야] 박노해 사진전 - 빛으로 쓴 시 _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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